에피소드 02
2019년 10월

시티팝에 대한 몇 가지 정의 혹은 반대 의견. 일단 시티팝은 장르가 아니다. 스타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범위는 훨씬 넓다. 감수성 혹은 감각에 가깝다. 그러니까 느낌적인 느낌. 오케이, 시티팝은 도시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 그러면 여기서 ‘도시적인’이란 걸 설명해보자. 도시에 대한 이미지라니, 그건 도시를 처음 본 사람과 매일 같이 도시를 보는 사람들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텐데? 높다, 정신없다, 인정없다, 차갑다 등등과 멋있다, 아름답다, 고요하다, 따뜻하다 등등. 이걸 설명하려면 아무래도 시티팝이라 불리는 음악이 언제 유행했는지 살펴봐야할 것이다.

 

 

시티팝이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스타일 중 하나다. 장르적으로는 스무드 재즈, 훵크, 디스코, 보사노바 등이 뒤섞인 ‘퓨전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미국의 캘리포니아 근방인 웨스트 코스트 지역에서 유행한 AOR(Adult Oriented Rock)과 요트 록(Yacht Rock)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한없이 낙천적이고 여유롭게 듣기 좋은 사운드가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서 뒤섞인 셈이다. 

 

 

시티팝 사운드의 원형은 당시 일본에서 인기있던 핫피 엔도(Happy End)나 틴 팬 앨리(Tin Pan Alley) 같은 밴드의 멤버인 호소노 하루오미, 스즈키 시게루, 야마시타 타츠로 등이 완성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밴드 활동 이후 솔로로 전향한 이들이 직접 작곡하거나 제작한 팝 사운드가 시티팝의 원형이다. 16비트 리듬을 토대로 신시사이저와 감미로운 보컬이 유유하게 흐르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 그런데 이 음악은 당시엔 시티팝이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의 음악은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Pacific breeze)’같은 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일본식 퓨전 음악의 감미로운(mellow) 분위기와 도쿄라는 대도시의 지리적 위치가 연결된 낭만적 표현이 바로 시티팝이다. 그래서 에메랄드 색감의 바다와 초록의 야자수, 눈이 부신 백사장과 새빨간 스포츠카 같은 것들이 시티팝의 오브제로 자리잡았다.

 

 

이때 ‘퓨전’이라는 음악적 실천은 단순히 장르적 결합이나 실험의 한 방식이 아니라 좀 더 깊숙한, 우리 삶의 본질에 가까운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조망해보면 20세기의 아시아는 서양의 정치 구조와 시장 구조를 수용하면서 대혼란기를 맞이했는데, 그 라이프스타일의 급변이 우리 삶의 철학과 가치관을 본질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퓨전’이란 아시안이면서도 아시아 밖을 지향하는 모순적인 멘탈리티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특히 일본은 오랫동안 자의반 타의반 탈아시아적인 공동체를 지향해왔으므로 보다 복잡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발생한 70년대의 퓨전 음악이 21세기에 이르러 시티팝으로 불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다. 무엇이라고 말하기 애매하지만, 어딘지 대도시의 일상을 위한 BGM으로 최적화된 음악, 말이다. 

 

 

새삼 ‘도시’란 어느 나라에 있어도 비슷하다. 매끈한 고층 빌딩과 낡고 낮은 건물, 빼곡한 신호등과 횡단보도, 줄지어 선 버스와 승용차, 거리의 소음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철… 이런 풍경 속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이 되어 군중 속에 스며든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안락한 하루를 보내고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상상이든 실제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도시의 시민들은 대체로 고아 같다. 시티팝은 이런 고아 감수성을 위로하거나 독려하는, 정체불명의 음악이다. 그래서 수십년 전의 음악이라는 것과 무관하게, 친근하고 세련되게 들린다. 거기에 매료되고 만다. 태평양을 건너고 시간을 가로질러 마침내 탈공동체적인 감각을 구현하는 도시의 BGM이다. 

 

글_차우진 (음악평론가)

 

 


 

 

 

Playlist

시월에시티팝 by 차우진

친근하고 세련된 정체불명의 음악, 시티팝. 음악평론가 <차우진>님이 선정한 1975~1987년 사이의 시티팝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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