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페티시 하나쯤은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패티시는 이렇다. 나는, 멋진 음반 커버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타입의 인간이다. 이건 그러니까, 차라리 신앙에 가깝다. “이런 커버를 내세우고 있는 뮤지션/밴드의 음악이 좋지 않을 리 없어”라고 확신하는 셈이다. 과연, 이번에도 내 신앙은 크게 보답 받았다. 이 정도면 최소 10년 동안 빠짐 없이 십일조 낸 기독교인 뺨칠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 밴드 암갈라 템플의 [Invisible Airships]은 끝내준다. 그냥 끝내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끝내준다. 우리는 때로 예술과 기술을 물과 기름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이런 경향이 짙어졌는데 연주력 아닌 창작력에 무게 중심을 놓으면서 어떤 균열이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장르적으로는 펑크를 기반으로 하는 그런지가 득세한 시기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기술이 극한에 다다르면 그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과 예술은 물과 기름이 아니다. 기술은, 예술이라는 꽃을 더 활짝 피게 만들어주는 햇살이다. 암갈라 템플의 곡 ‘Bosphorus’를 들어보라. 12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지루한 순간이라고는 1초도 없다. 끊임없이 변주를 주고, 사운드의 굴곡을 다르게 가져간다. 무엇보다 기술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완성도다. 장르적으로는 사이키델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암갈라 템플은 1960년대 사이키델릭의 현대적 계승자다. 소리의 외연을 넓히거나 소리 자체의 톤에 다채로운 변화를 주면서 듣는 이를 황홀경으로 몰고 간다. ‘Avenue Amgala’에서 들을 수 있는 4분 14초의 변주 구간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완전히 다른 템포와 컬러를 지닌 두 곡을 절묘하게 매쉬–업해놨다. 이런 음악, 대충 흘려 들어서는 무언가를 놓칠 수밖에는 없다. 완전하게 집중한 상태에서 감상해야 마땅하다.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혀로 구석구석 핥듯이 듣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The Eccentric’ 같은 곡의 정수에 비로소 다가설 수 있다. 그나마 이 곡이 6분 정도로 제일 짧다. 이 곡으로 먼저 준비운동 마친 뒤에 1번부터 쭉 듣는 걸 추천한다. 만약 자신 있다면 1번 트랙부터 정주행 시작해도 무방하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