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묘하다. 인디 팝인 것 같다가도 월드 뮤직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고, 때로는 블루스적인 터치가 고개를 불쑥 내민다. 사운드는 좀 비어있지 않나 싶었는데 쭉 듣다 보면 그게 되려 매력적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자료에 따르면 그들의 음악이 겨냥하고 있는 과녁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즈음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복고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복고, 즉 레트로한 취향에는 두 가지 갈래가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재현이고 다른 하나는 구현이다. 재현은 있는 그대로의 복사에 가깝다. 반면 구현은 거기에 자기만의 인장을 새겨 넣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노르웨이 출신의 오리온스 벨트(Orions Belte)의 음악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훨씬 더 근사해있다. 전통에 기대어 있지만 그걸 자기만의 캐릭터로 변주해낼 줄 안다. ‘Joe Frazer’가 대표적으로 강추할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에서 오리온스 벨트는 인디 팝과 블루스를 탁월하게 섞어낸다. 2분 이후 펼쳐지는 강렬한 솔로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과거라는 등불로 미래를 비추려는 음악적인 욕망에 충실한 덕분이라고 본다. 어떤 책에서 기억이라는 행위에 대해 다음 같은 정의를 읽었던 적이 있다. “기억하기란 단순히 기억의 대상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억하는 주체의 깨달음이 침투해있는 과정이다.” 이 정의에 정확히 부합하는 케이스가 바로 오리온스 벨트의 음악이 아닐까 한다. 어떤 책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혹시 알고 있다면 나에게 연락주기 바란다. 사운드는 비어있다기보다는 공간을 최대로 활용한 결과물로 봐야 한다. 어딘지 모르게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소리의 질감을 연상케 하는 순간도 여럿 있다. 멜로디의 서정미가 돋보이는 ‘New Year’s Eve’과 변칙적인 리듬을 중심으로 하는 짧은 연주곡 ‘Delmonte’ 등이 이를 증명하는 곡들이다. 이를 테면 오리온스 벨트는 앞 세대가 써놓은 과거의 일기에 충실한 동시에 미래의 달력 챙기기를 잊지 않는 밴드다. ‘Picturephone Blues’를 들어보라. 영락없는 블루스의 기운을 품고 있지만 절묘하게 이것이 다름아닌 현재의 사운드트랙이라는 느낌을 준다. 전자음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한 7분 30초짜리 대곡 ‘Atlantic Surfing’에서는 적당한 속도로 질주하는 리듬을 통해 활력을 부여했다. 그들은 뭐로 봐도 1970년대 아닌 2019년의 밴드 맞다. 솔직히 쉽지만은 않은 음악이다. 아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섬세한 소리의 결들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그 미묘함 속에 오리온스 벨트라는 밴드의 진가가 숨어있다고 믿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0분이다. 30분만 투자하면 인생 밴드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